[컴퓨터월드] 클라우드, 보안, 네트워크 솔루션 구축 및 서비스 전문기업인 오픈베이스가 2025년 9월 18일부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한다. 1995년 대용량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오픈베이스는 IMF라는 국가적 위기에도 오히려 사업을 확대하며 성장했고, 30년간 자금난 한번 없이 꾸준히 성장해 이제 다수의 자회사를 거느린 중견 그룹사가 됐다. 지금의 오픈베이스를 있게 한 창업주 정진섭 회장을 만나, 회사의 성장 과정과 경영 철학을 들어본다.

“개인의 신용이 곧 회사의 신용”
“임직원들에게 말끝마다 ‘신용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용을 지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게 하는 개개인의 모습이 곧 고객들에게 신용으로 평가되고, 이것들이 모여 회사에 대한 신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오픈베이스의 창업주 정진섭 회장은 30년간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신용’이라 답했다. 정 회장은 10년 전 본지와의 창립 20주년 인터뷰에서도 신용을 강조한 바 있다. 인터뷰용으로 준비한 멘트가 아닌, 30년간 회사를 지탱한 핵심 철학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오픈베이스는 1995년 9월 18일 설립됐다. 초기에는 대용량 DB 시스템의 설계 및 구축을 통해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인터넷 보편화와 함께 ADC(Application Delivery Controller) L4 스위치를 국내 시장에 처음 소개했고, 네트워크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이제 데이타솔루션, 시큐웨이브, 오픈인텔렉스, 나노베이스 등을 주요 자회사로 둔 그룹사로 성장한 오픈베이스는 2024년 말 기준 그룹 전체 인원 555명, 연매출 2,262억 원 규모의 어엿한 중견 기업이 됐다. 특히 신뢰할 수 있는 기술력과 끝까지 책임지는 서비스로 고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30주년을 맞이한 오픈베이스의 성공 비결을 정진섭 회장에게 물었다.
실패로 단련된 마음가짐이 성공 이끌어
- 오픈베이스 창업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사실 오픈베이스 창업은 떠밀려서 한 것이다. 1983년도쯤 에너지경제연구소라는 곳에서 컴퓨터로 예측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할 때였는데, 조립형 PC 사업을 함께 시도하다 과로로 건강이 나빠져 창업에 실패했다. 그 다음은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렸다가 제품화를 못해 끝까지 못 가고 포기했다. 지금은 그런 과정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느끼지만, 그렇게 2연패를 해보니 사람이 굉장히 겸손해지더라. 그래서 사업이라는 건 나에겐 안 되는 일이고, 나는 취직해서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었다.”
“이후 겨우 취직에 성공했고, 흘러 흘러 오픈테크라는 회사에서 공공부문 검색 시스템 프로젝트 팀장을 맡게 됐다. 그때는 공공기관 등 여러 곳에서 툭하면 사장을 부르는 일이 많았는데, 투입되는 노력 대비 이익이 적다고 판단해 독립 법인을 차리라고 하더라. 자금도 없고 경험도 없었지만 일단 다 지원해 주겠다는 말에 당시 기술팀장이던 배복태 사장(현 데이터솔루션 대표)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도전하게 됐다.”
- 어려운 일은 없었나.
“그렇게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였는데, 막상 해보니 그동안 실패를 통해 단련된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됐다. 학력으로는 화려한 사람이 두 번의 실패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들이 재밌어하더라. 그걸 무기로 쉽게 친해졌다. 서울대와 KAIST를 거쳐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 유학해 박사 과정까지 했지만, 막판에 회사 차린다고 논문을 못 내서 박사학위는 없다. 사실 어떻게 보면 유학 와서 공부도 못 끝낸, 인생의 낙오자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공부를 끝마쳤다면 오늘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거다. 지금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월급만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오픈베이스는 한 번도 자금 문제를 겪는 일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약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특정 고객이나 외부 자금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며 사업을 해왔다는 것이 30년 생존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위기를 기회로, 협력은 더 큰 성장의 밑거름
- IMF라는 국가적 위기가 오히려 성장의 계기였다고.
“사실 처음엔 기존 업체들을 뚫고 영업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IMF가 터지니 그들이 다 망하고 세상이 확 달라졌다. 당시 모 기관에서 우리를 불러 다른 업체들은 다 부도가 났으니 우리가 뭘 도와줘야 사업을 할 수 있느냐고 할 정도였다.”
“우리도 IMF 때문에 힘들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하청을 지양했고, 이게 결정적으로 차이를 만들었다. 초기 대용량 DB 검색 시스템 사업이 잘될 때 주로 우리 이름으로 직접 계약을 했고, 그게 힘들 때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계약했다. 알다시피 IMF 당시 하청으로 사업을 하던 회사는 대금이 지급되지 않아 다 망했다.”
- 대용량 DB에서 네트워크로 주력사업이 바뀐 배경은.
“당시 오픈베이스는 자체적으로 대용량 DB 검색 시스템 관련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의 검색 기술 기업인 잉크토미와 협력한 것도 회사 성장에 도움이 많이 됐다. 당시 잉크토미는 야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검색 기술로 경쟁하던 회사였는데,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기업들은 IMF 때문에 외국 기업과 일체의 거래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면서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인 우리와 계약을 하게 됐다. 당시 잉크토미 측에서 이런 작은 회사와 계약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었다. 잉크토미는 이후 오픈베이스가 코스닥에 상장할 때에도 지분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잉크토미와 협력하면서 이들이 가진 인터넷 트래픽 관리 서버 기술을 다루게 됐고, 그게 현재 오픈베이스의 근간이 됐다.”
“네트워크 쪽으로 주력 사업이 본격적으로 바뀐 배경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2000년대 초 인터넷 트래픽이 폭발하는 가운데, 네트워크가 마비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 원인을 시스코 엔지니어들도 못 찾았는데, 우리는 대용량 DB 사업을 하며 쌓은 데이터 트래픽 분석 노하우를 이용해 문제를 풀 수 있었다.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부하가 집중돼 전체 네트워크가 다운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하드웨어적 한계를 소프트웨어로 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때부터 ADC 분야에 특화된 기업으로 자리했다. 그 결과 국내 최초로 L4 스위치를 도입하고, 네트워크와 애플리케이션 계층을 아우르는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개인의 신용이 모여 회사의 신용이 된다”
-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
“직원들도 다들 알다시피 말끝마다 신용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용을 지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한 개인의 신용이 쌓여야 고객이 신뢰를 갖게 되고, 그것들이 모여 회사의 신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혹 실수로 계약서에 숫자 0 하나 더 썼더라도, 고객에게 한 약속이니 일단 책임지고 신용을 지키려 노력하라고 강조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신용이 쌓였다면 고객도 우리의 사정을 고려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고객과 직접 마주하는 영업 담당이나 엔지니어들이 신뢰를 받아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고 실천해주는 영업팀, 그리고 기술팀에게 감사하다. 송규헌 부회장이나 황철이 대표가 IBM 출신이라 영업 팀이 아주 빡빡하고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게 사실인데, 그 틈을 엔지니어들이 잘 메꿔줬기에 고객에게 신뢰를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고객들로부터 나쁜 평가, 험한 소리는 듣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오픈베이스의 기술지원과 서비스는 90점 정도는 된다고 자부한다.”
“회사에서는 절약보다 돈 벌 생각만 하라는 이야기도 강조한다. 한번은 300페이지나 되는 제안서를 열심히 써서 데드라인이 코앞이라 급히 프린트를 해 갔는데, 이면지에 인쇄가 돼 있었다. 그때 한번 크게 깨달았다. 앞으로 회사에서 절약의 ‘절’ 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회사가 회의에서 절약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면지를 쓰라느니, 에어컨 온도를 높이라느니 하는 얘기들이다. 공기업에서야 그런 아이디어를 내면 각광받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절약하는 조직이 아니니 그런 아이디어는 내지도 말라고 했다. 절약은 개인적으로 하고, 회사에서는 절약하는 데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돈 버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송규헌 부회장에 이어 황철이 대표가 오픈베이스를 경영하고 있다. 의사결정에는 얼마나 참여하나.
“20년 전 60여 명이던 회사가 이제는 555명으로 9배 늘었고, 10년 전 200~250여 명일 때에 비해서도 인원이 2배나 늘었다. 이러한 성장은 IBM에서 온 송규헌, 황철이 두 분이 영업 프로세스, 서비스 대응 체계, 전산 시스템과의 연계 등 세부적인 회사 시스템을 잘 마련했기에 가능했다.”
“회사의 장기 비전과 핵심 철학이 흔들리지 않는 한, 구체적인 실행은 현장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회사를 키워 보니, 임직원 각자가 리더로서 어느 정도 숫자의 직원을 관리, 활용하면서 책임감을 갖고 맡은 부분에서 수익을 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더라. 책임감을 갖고 리더가 되는 길을 배워 나갈 수 있도록 인재를 키워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참견하지 않고 말조심하려고 노력한다. 괜히 임직원들을 피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경영 회의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고, 회사가 흔들릴 수 있는 일이 아니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지 않는다. 이는 곧 회사의 경영과 성장을 책임지고 일해달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직원과 사회에 감사…복리후생 항상 고민한다”
- 사업을 시작하며 목표한 바는 이뤘는지.
“오픈베이스라는 사명을 지금까지 사용하면서 같은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상장한 회사 중에서는 이런 사례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처음에는 월급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는 교수가 된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보다는 오래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친구들이 몇 년 전 모두 은퇴했고, 나는 아직까지 사업을 하고 있으니 처음 목표보다는 훨씬 많이 달성한 셈이다. 고맙고, 다행스럽고, 직원들과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 더욱 발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가장 큰 현안은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여건을 제공할까인데, 더 벌어야 하는 것과 엮인 문제기도 하다. 평균 이상의 대우는 해줘야 하는 게 기본일 거고, 개인적으로 특히 복리후생 지원에 대해 고민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현재 자랑할 만한 복지로는 각자 연봉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초저리로 대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고, 근속연수 5년마다 장기간의 리프레시 휴가도 주고 있다. 리프레시 휴가는 벌써 15년도 전에 직접 만든 제도인데, 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업무가 안 되고 난리가 나는 건 회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눈치 주는 사람 없이, 모두의 공감대 속에서 아직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또 다른 건 인력에 대한 문제다. 30년 된 회사다 보니 젊은 회사와는 인적 밸런스가 다르다. 회사가 더 성장한다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영업 등 부문은 피라미드로 못 가고 있다. 초기 뛰어난 소수가 회사 성장을 주도하는 중소기업의 숙명이라고 본다. 더욱 회사가 커진다면 이런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지금은 인재들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고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좋게 잘 보내주는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재입사하는 경우가 꽤 있어, ‘회사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B2C로 확장해 TV 광고하는 게 못 이룬 꿈”
- 한국정보산업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국내 IT 업계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보나.
“국내 SI 시장이 망가진 상황이라고 본다. 중견·중소기업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공공 SI 시장에 뛰어들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 중소기업, 발주처 등 각자의 역할이 정립돼야 하고, 각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기업들이 자신감을 갖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컨설팅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나 IT 컨설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한때 오픈베이스 차이나를 통해 현지에서 사업을 하며 놀란 것이, 예를 들어 충칭 같은 곳에 위치한 회사가 베이징의 컨설팅 회사를 부르면 출장비가 많이 든다. 그럴 때 중국 기업들은 필요한 비용을 당연히 계산해 지불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국토 크기와 시장 규모가 작아서 그런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될 것으로 본다.”
- 오픈베이스의 40주년, 50주년 미래를 전망한다면.
“월급만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넘어 그동안 하나씩 바라던 목표를 달성해왔다. 호텔에서의 송년회, 체육관 빌려 체육대회 열기, 매출 100억 원, 1천억 원 등 다 이뤘다. 딱 하나 못한 게 있는데 바로 TV 광고다. 우리는 B2B 기업이라 그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업 범위를 넓혀 TV 광고도 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언젠가는 B2C 서비스를 선보여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AI 관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AI에 대해 관심이 많다. ‘Attention Is All You Need’ 같은 논문도 읽고, 직접 프로그래밍도 해봤다. 엔지니어 출신이라 기사나 책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하고 더 파고 들어가 봐야 한다. 현재 오픈베이스가 AI 관련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하고 있지는 않지만,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는 하고 있다. 고객센터나 사내 업무 등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활용 사례 인터뷰나 콘테스트 등을 통해 AI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2000년대 인터넷이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듯이, AI도 앞으로 개인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오픈베이스가 인터넷 확산과 함께 성장했듯, AI로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맞았으면 한다. 40주년, 50주년까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고객분들과 파트너사분들께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